뒤늦게 쓰려니 감정이 잘 안 살지만 탐욕 오빠를 본 소감을 남기려 합니다. 그래, 나는 7월 27일 탐욕 오빠를 보러 지산으로 향했습니다. 오빠 보러 간다고 내가 난생 처음 레이스 민소매도 입고(무려 민소매!)말야 그랬는데, 지산 가는 길이 진짜 지옥이었다? 주차장 같은 도로가 뭔지 두 번째로 알았어. (첫 번째는 폭설 내린 명절 집에 내려갈 때.. 한 시간 반 거리를 열 세 시간 걸렸떠.) 여튼 그 도로 위에서 나는 아.. 내가 라디오헤드를 보러 가는 게 맞긴 맞구나 확 실감했지. 오빠들은 역시 월드와이드 한 밴드더라.
나는 반 백수. 금요일이라도 평일인데 지들이 어찌 이른 시간에 오겠나 싶어 룰루랄라 좀 여유있게 출발했는데 쏐. 다들 엄청 부지런 합디다. 나는 완전 졌지 뭐야. 역시 부지런 한 게 짱인가 봐.
가서 검정치마 보고, 엘비스 코스텔로 보고, 들국화 보고, 맥주도 마시고 막 그러려고 했는데. 검정치마는 얼굴도 못 봤어. ㅋㅋㅋㅋㅋ
저 밑에 주차를 하고(미끼가) 2.5km를 걸어걸어 티켓 부스에 도착했을 때 이미 검정치마는 앵콜곡을 부르고 있었떠. 그건 그렇고 내가 펜타 지산 통틀어 이렇게 사람 많은 건 처음 봤다? 막 꽉꽉 차서 퇴근 시간 2호선 전동차 안 정도?
의미 없는 사진. 2012 지산.
목이 너무 타서 맥주 한 잔 겨우 들고 메인스테이지로 갔는데, 코스텔로 아저씨가 공연하고 있더라. 나도 그 아저씨 노래 뭐 아는 게 있간디. She 언제 부르나 그러고 있었지. 뭐 결국 부르지는 않았지만(그래서 크립 들으러 온 사람들 저 할아버지는 뭐냐는 둥 막 그러고 있더군) 참 좋더라. 여름, 해질 무렵 듣기 딱 좋았고, 드러머 멋있던데? ㅋㅋㅋㅋ
코스텔로 아저씨 들어가고도 메인 스테이지 앞을 메운 사람들은 라디오헤드 기다리느라 반절은 넘게 움직이지도 않더라. 난 뭐 이미 포기해서 들국화 보러 갔지. 공연 전에 미끼가 나한테 요즘 전인권 아저씨 목소리가 전성기 때보다 더 좋아서 들국화 공연이 최고라는 얘기를 들려줬거든. 그냥 보러 가야겠다,, 정도의 미적미적 걸음으로 그린스테이지로 가는데 갑자기, '그것만이 내 세상'이 들리는 거야. 소름이 쫙. 그때부터 막 뛰었어.
나 근데 사진을 뭐 이따위로 찍었지;
나는 듣지 못했지만 최성원이 전인권을 소개할 때 '죽음에서 살아돌아 온'이라고 말했대. 머리가 하얗게 샜고, 외쿡 뮤지션 같은 느낌으로 앉아서 노래를 하는데 왠지 그냥 알겠더라. 이 공연 진짜 좋겠다.. 미끼는 막 눈물이 났대. 공연 중간 멘트도 참 좋았는데, 이 아저씨가 그러더라.
"너네 나이 먹는 거 너무 무서워 하지 마. 먹어보니 별 거 아니더라."
이말 듣는데 울면서 달리고 싶더군.
그리고 다들 공연을 너무 좋아하니까 "고맙다, 고마워"라고 말하는 것도 좋았어. 짠하기도 하고. '행진'(이건 못 들었어), '그것만이 내 세상', '제발', '사노라면', '제주도 푸른 밤', '매일 그대와' 등. 어쩜 이렇게 모르는 노래가 없을까 싶을 정도였는데, 들국화가 이 정도구나 싶어서 막 혼자 뿌듯해 하고 그랬다? 커버 곡도 몇 곡 했는데 목소리 진짜.. 하.. '사노라면' 부를 때는 관객들 다 목놓아 울었다 진짜 깔깔.
공연이 너무 좋으니까 내 앞에 있던 남자가 앵콜 외치며 흥분해서 "라디오헤드 저리 가라 그래!"라고 했을 정도. (물론 라디오헤드가 급한 사람들은 앵콜이고 뭐고 막 뛰어갔지만.) 들국화는 앵콜 외치고선 금방 나왔는데 전인권이 또 그러는 거야. "원래 더 끌고 나와야 하는데 니들 다 갈까봐. 헤헤." 이 아저씨 원래 이렇게 귀여웠나.
미끼는 막 난리나고, 내 옆에 있던 별님도 흥분 상태로 날 막 잡고 흔들고. 그 흥분 증폭시키려고 레드불+보드카 사서 마시고 ㅋㅋㅋ
탐욕과 나 사이. 대략 이 정도의 거리, 느낌.
라디오헤드를 보러 갔지. 탐욕 오빠. 이 오빠 물갈이 하는 뮤즈처럼 늦지도 않고 말야 칼같이 아홉시 반에 딱 나오더라. 난리 났지. 우리는 좀 늦었지만 미끼가 이끄는 대로 왼쪽 사이드로 헤치며 걸었어. 거기는 좋더라. 여유있고. 탐욕 목소리를 어떻게 다닥다닥 붙어서 들어. 난 그건 진짜 싫었는데 다행이지 뭐야.
근데 이 오빠 나오자 마자 막 춤을 추는 거야. 한번 검색해봐 '톰 요크'. 그러면 '톰 요크 오징어'가 연관 검색어로 떠. ㅋㅋㅋㅋㅋ 무슨 춤을 그렇게 열정적으로 추는지, 웃통도 벗었다? 깜짝 놀랬긔. 또 스크린을 네 분할 해서 얼굴도 잘 안 보여줬어. 난 그래서 그 오빠의 오징어 같은 움직임, 사람 주저앉게 하는 목소리를 가만히 지켜봤지. 떼창 할 만한 곡이 거의 없었는데도 사람들은 잘 놀더라. 애썼어. 그럼 그럼. 오빠를 다시 오게 해야지. 크립 부르게 해얘지. 암. ㅋㅋㅋ
공연한 지 한 시간 반 정도 지나고, 난 왠지 불안해 져서 녹음을 시작했어. 뭐 것보다는 Karma Police를 부르기 시작하니 이건 녹음이다! 싶었던 건데, 적당한 떼창까지 섞여서 대박 멋진 음원이 되었지 뭐니. ㅎㅎ 여튼 이게 마지막 곡이구나. 싶어 계속 녹음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녹음한 시간이 무려 1시간 10분 -_- 앵콜 나와서 무려 오십분 정도를 더 했다? 그것과 관련한 두 가지 설. (1)한국 관객이 마음에 들었다 (2)옛다 곡 투척하고 다시는 오지 않으려 한다. 뭐 같냐?
이런 말 웃기지만 라디오헤드 들으면서 주저 앉아 보는 게 꿈이었음.
Exit Music을 진짜 좋아했거든. 고등학교 때 책상에 앉아 들으면서 우울우울에 빠져들었지. 라디오헤드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그런 경험 있지 않겠긔. 느네도 그랬지? 갑자기 탐욕 오빠가 그 목소리로 부르는데 주저 앉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아아. 내 녹음 파일 다 들려주고 싶다. 으아. 끝 곡은 뭐였게? Paranoid Android. 그리고 오빠는 갔다. 다른 아티스트들 처럼 다음에 또 올게! 같은 말은 남기지도 않고 사라졌지. 갔다. 갔어. 모두의 한때 학창시절 우울을 지배했던 오빠가 왔다 갔어. 아직도 신기해. 내가 니들 만나자마자 들려줄게에. 쎄울러전이 녹음한 라디오헤드 라이브 실황. 들은 사람 모두가 감탄했다구. 히히.
우리 같이 모여 크립 라이브 듣는 날이 올까. 그때 두 번 불러줬으면 좋겠다. 한번은 조용히 듣고, 한번은 미친듯 소리지르며 떼창하게. 생각만 해도. 아아. 하이 앤 드라이도 불러주고 말입니다.
이상 탐욕의 현장이었음.
+ 그건 그렇고, 탐욕 오빠 많이 늙었더라. 초록색 티 쪼가리 어울릴 나이가 아니야 이제;
이봐 이봐. 노는 사람 봐. 우리 재작년에 이 풀밭 위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버티던 기억 나냐? 죵니 추웠지.
셋이서 치킨 두 마리. 욕심이었지. 인정한다. 결국 한 마리는 거의 그대로 들고 왔다능~
이 허연 밀가루떡 다리의 주인공은 누구? ㅋㅋ
안뇽.
+
나도 못본 2012 지산 이야기
1. 야 아울시티가 한국 빠돌이 되어 돌아갔대.
2. 스톤로지즈 공연할 때 리암 갤러거가 객석에서 신나게 놀았대.
다들 하는 얘기가 '저 술취한 외국 아저씨 뭐야!' 싶어서 봤더니 리암이더라는. 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어떤 계탄 녀성에게는 뽀뽀를 했......
아오 나 왜 안 갔지 일요일에...................... 그래도 난 탐욕 오빠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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