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새벽 네시 사십이분. 목요일이 된지 다섯시간이 다 되었네. 나는 사람이 몇 없는 도서관 지하 컴퓨터실에 앉아 숙제를 하고 있어. 토요일에 내야 하는 열장짜리 과제가 두개. 심지어 그 날은 발표도 있어서 휴. 강렬한 하루가 될거야.
얘들아, 오늘 생각을 해봤는데 말이야. 산다는 것의 고됨은 결국 내가 어떤 도시에 살고 어떤 침구에서 자고 어떤 그릇에 밥을 덜어먹는 것과는 크게 상관이 없는 것 같아. 결국 모두 살아있어서 고단하기 때문에, 누구나 동정 받을 수 있는 것 같아. 뉴욕에 사는 나는 늘 브런치를 먹고 삅스 애비뉴를 궁둥이 흔들며 걸어야 할 것 같지만, 알잖아. 내가 서울에서 보다도 고된 하루하루를 버텨나가고 있다는 것을. 물론 내가 사는 도시의 이름에 각자의 환영을 곁들일 수 밖에 없는 또 다른 고단한 이들에게는 그래도 나의 고단함이 훨 나아 보이리라는 걸 알아. 그래서 나의 고단함을 너그럽게 받아들여 주는 서울과 런던의 고단한 너희들이 고맙구나.
자고 일어나면 또 고단한 하루일거야. 그래서 나는 잠들고 싶지 않지만, 잠자고 나서의 고단함과 잠 못드는 밤을 지샌 이후의 고단함은 큰 차이가 있더라. 왜냐면 우리는 육신이 늙어 지쳤기 때문에.
나는 하던 과제를 마저 하러 갈게. 나는 지금 우리보다 삶을 먼저 고단하게 살았던 피카소에 대해 쓰고 있었어. 여자 때문에 자살한 베스트 프렌드의 그 문제의 여자와 동침한 피카소의 삶도 참 고단했던 것 같아. 이 변태 배불뚝이 예술가 같으니.
이제 되도록이면 이곳에 글을 더 자주 남기는 노력을 하기로 했어. 나는 쓰는 방식으로 배설을 하고 나면 고단함이 덜 해지는 것 같아서 말이야. 물론 쓰는 고단함이 수반되긴 하지만 이 정도 고단함의 교환 거래는 오케이. 자, 서울과 런던의 고다너들도 힘을 내어 써주렴. 뉴욕의 고단한 퀸즈 김은 이만 총총.